
법이 처벌하지 못하는 악인 앞에서, 피해자 가족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JTBC 드라마 괴물은 이 질문을 20년 동안 여동생 실종 사건을 붙잡고 살아온 이동식이라는 인물을 통해 밀도 있게 던집니다. 저도 이 드라마를 보면서 대학 시절 법학 세미나가 자꾸 떠올랐는데, 그 이유를 글로 정리해 보고 싶었습니다.
20년의 무게 : 법이 닿지 않는 곳
이동식은 문주시 만양 파출소 경사입니다. 동네에서는 "못 말리는 미친놈 경찰"로 통하는 인물이죠. 화투판 단속에 형법 조문을 줄줄 읊고, 증거도 안 되는 사건을 가지고 들이닥치는 그를 보면서 처음엔 그냥 개성 강한 캐릭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그 행동 방식의 밑바닥에 깔린 것이 무엇인지 서서히 드러납니다.
20년 전 동식의 쌍둥이 여동생 이유연은 자택 마당에 손가락 한 마디만 남긴 채 실종되었습니다. 그 사건은 미결(未決), 즉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로 종결되지 않고 동식의 삶 전체를 잠식하고 있죠. 미결 사건이란 수사가 개시되었으나 공소 제기 없이 종료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한국 형사소송법 체계에서 이런 사건들은 공소시효(公訴時效) 적용을 받는데, 공소시효란 일정 기간이 경과하면 국가의 형사 소추권이 소멸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살인죄의 경우 2015년 법 개정 이후 공소시효가 폐지되었지만, 그 이전 사건들은 여전히 법적 공백 속에 놓여 있습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동식의 어머니는 딸을 기다리다 동사한 남편을 잃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아버지는 유연을 기다리다 동상에 걸려 숨졌죠. 이 가족이 감당한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드라마는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냥 보여줄 뿐입니다. 제가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솔직히 숨이 막혔습니다.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피해자 가족의 절망"이라는 개념이 갑자기 살과 뼈를 갖게 되는 느낌이었거든요.
법의 한계 : 앞에서 괴물이 되는 심리전
드라마의 핵심 긴장감은 이동식과 한주원의 심리전에서 나옵니다. 한주원은 경찰청 차장의 아들이자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경위인데, 외사과에서 불법 체류 여성들만 골라 살해하는 연쇄 살인 사건을 20년 전 사건과 연결 짓고 추적하던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만양 파출소에 자원 전입한 진짜 이유는, 동식을 용의자로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드라마가 흥미로운 점은 범인을 숨기고 있는 동식의 행동입니다. 정육점 사장 강진묵이 동식의 조카 같은 존재인 강민정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동식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고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체(死體)가 없기 때문입니다. 형사소송에서 사체 없는 살인 기소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無罪推定 原則)이란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피의자를 무죄로 간주해야 한다는 원칙인데, 이 원칙 아래에서 증거 없는 기소는 무죄 방면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동식이 선택한 방법은 함정 수사(陷穽搜査)에 가까운 설계입니다. 함정 수사란 수사 기관이 범인을 유도하거나 증거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체포하는 방식인데, 우리 법원은 이를 위법한 수사로 보아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동식도 이를 알기에 "불법으로 찾은 휴대폰이 증거로 작용될 수 없다"라고 스스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타인의 손가락을 챙기고, 지하실을 청소하고, CCTV를 달고, 자신이 잡히도록 설계하는 극단적인 경로를 택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동식이 맞다"는 감정이 먼저 올라오지만, 한 발짝 물러서면 그가 저지르는 행위들이 모두 범죄라는 사실이 선명해집니다. 대학 세미나에서 교수님이 "사적 복수가 정의라고 착각할 때 법치주의는 무너진다"고 하셨던 말이 정확히 이 장면에서 겹쳐졌습니다.
드라마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으로 보이는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동식은 법의 한계를 정확히 알기 때문에 법 밖의 방법을 선택한다
- 진묵이 실제 범인이지만 동식의 수사 방식 자체가 법적으로 무효다
- 주원은 동식을 의심하면서도 결국 그의 방식에 끌려가는 구조다
- 지훈, 상배, 정제, 지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법과 개인 윤리 사이에서 선택한다
정의와 복수 : 드라마가 남기는 진짜 질문
괴물이라는 제목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연쇄 살인범이라는 괴물, 그리고 그 괴물을 잡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되는 동식. 이 이중 구조가 드라마 전체를 관통합니다.
사실 제가 주원의 역할이 모호하다고 느낀 부분이 있는데, 그는 동식을 의심하면서도 진묵의 범행 가능성을 알아가면서 점점 동식의 계획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주원이 동식의 범죄적 행위를 인지하면서도 묵인한다면, 이는 직무유기(職務遺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직무유기란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를 수행하지 않는 행위로, 형법 제122조에 따라 처벌 대상이 됩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실제로 미결 사건 피해자 가족들이 겪는 심리적 외상(外傷)은 연구로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미결 사건의 장기화는 피해자 가족에게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Complex PTSD)를 유발할 수 있는데, Complex PTSD란 단순 PTSD보다 장기간 반복된 외상 경험으로 인한 더 복잡한 심리적 손상을 의미합니다. 동식의 행동 방식은 이 심리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그의 불법 행위를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드라마 괴물이 진정으로 잘 만든 작품인 이유는, 동식이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시청자가 그에게 감정이입하면서도, 동시에 "이게 맞는 건가?"라는 질문을 떨쳐버릴 수 없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저도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법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책임이 결국 사회 전체에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습니다.
동식이 20년 만에 범인을 잡을 수 있을지, 그 과정에서 자신은 어떤 존재가 되어 있을지, 아직 남은 이야기가 무겁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드라마가 "법을 우회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로 마무리되지 않기를, 그래서 정의와 복수의 차이를 끝까지 붙잡아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